현장정조공부 ㅡ 용주사
절이다.
용주사라는 절인데,
정조가 융릉 지키라고 만든 절이다.
아주 돈이 많은 절이란다...
배운게 있으니 또 기록해둔다.
지난 태풍에 홍살문이 날라갓음.
뒤가 성황산.
왜 절앞에 홍살문이 잇을까?
홍살문은 서원, 향교 이런데 있어야 하는데,,
여긴 일주문이 없어.
문도 삼문. 서원, 향교같은.
여기는 원찰이라 그럼.
왕릉에 따라 원찰이 있음.
여주의 신륵사, 광릉에 봉선사, 선정릉에 봉은사, 파주에 보광사 5개 남어잇음.
원찰이라 유교식으로 지어져잇음.
신륵사같은건 있던 절을 원찰로 지정해서 유교식 건축은 아님.
원찰을 옛날엔 조포사라고 했는데,
두부만드는 절이란 뜻임.
조포사라면 100% 원찰.
원찰은 왕릉에 소속된 절이고, 원당은 종친에 소속된 절.
정조가 즉위하자마자 원당을 싹 없애버림.
정조는 자기를 위해서는 멀 안함.
왕되고 나서 하루에 두끼 먹겠다 그것도 반찬 5가지로만 먹겠다.
무척 스스로에게 검소한 왕임.
한겨울에 한강에서 왕실용 얼음을 백성들이 캐고 그랬음.
정조는 그런 내빙고도 없애버림.
종친들이 백성 수탈하면 종친재산 전체를 몰수해버림.
피도눈물도 없이 처리함.
이양반이 그런데 아부지만 나오면 우기기를 하고 다른일처럼 하지를 않음.
그래도 정조는 아버지 관련 사업을 신하가 간하여 진행하도록 함.
현륭원 공사책임자가 공사 마무리 된 날 바로 장례치르고 조포사 세우는 것을 건의.
불교의 자비가 유교의 인과 다르지 않다.
양명학은 지행합일을 이야기 하는 매우 중요한 학문이다.
노장사상은 선비의 호연지기를 키우는데 중요하다.
서학의 사랑도 유교의 인과 다르지 않다.
사상에 대한 포용을 정조가 말함.
워낙 공부로는 압도적이었을테니까...
그러면서 사도세자를 위한 원찰 짓는게 합의가 됨.
경국대전 예조에 보면 사찰조가 있는데,
사찰은 새로 창건할 수 없고 옛터 위에 복원할 수는 있다고 나와있어서,
근데 요자리가 신라 갈양사라는 절이 있었음.
일주문 + 삼문 + ㅁ자 건물,, 유교식으로 지어놈.
대웅보전 상량문을 체제공이 쓰고 건물에 세로글자판(=주련)은 규장각 직원인 이덕무가 씀.
부처님 찬양글(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을 쓴 유일한 조선 임금.
그 글이 홍재전서에 들어있음.
용주사 건립비용은 8만 7천냥이 들어갔는데 다 시주로 함.
옛날에 천안 독립기념관 지었던 것처럼...(어르신들은 천원씩 내고 그랬다넴..)
이 절에서 젤 중요한건 호성전.
사도세자 위패를 봉안한 호성전이 젤중요.
두 번째로 중요한게 후불탱화 들어있는 건물.
이 후불탱화가 김홍도가 감독해서 그린거임.
근데 이게 천주교 성화 스타일로 그려져있음.
김홍도를 정조가 비밀리에 북경으로 보냄.
김홍도가 그때 성당가서 성화를 보고 두가지, 음영법과 원근법을 익혀옴.
그게 적용되어 있는 그림임.
대웅보전 내부는 궁궐처럼 되어 있음.
고려시대 때 종이 남은거이 3개인데 여기있는게 그중하나임.
나머지는 에밀레, 상원사 종이라는데,
인터넷 찾아보니 60몇개나 있다는뎁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