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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보러 서울가기 ㅡ 사람만나기

朝聞道夕死可矣 2024. 3. 2. 17:31

난 친구가 별로 없다.

나이를 먹으니 별로 없던 친구가 더 없어진다.

그러다가 최근 몇년간 몸도 안 좋으니 인간관계가 더욱 삭막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작년 가을부터 몸이 좀 회복되고 있고,

아직은 남아있는 친구도 있고 그런다.

서울에 친구 한 명이 있는데,

그 친구가 종종 자기가 이 동네로 일오게 되면 보자고 몇번 연락했었는데,

타이밍 안맞고 그래가지고,

보자고 연락주는 친구가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올라가보기로 맘묵고 갔다.

 

기차타고 갔다.

기차타고 가면서 회사원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아무리 잘생겨도 누구나 회사생활은 고달프다는 것을 느꼈다.

 

용산역에 내려서,

일정정리도 할겸,

서울이라는 큰 기대를 하고 에쏘하나 묵어봤으나,

역시나 실망이었다.

 

 

 

할머니께 인사도 드리고 그랬다.

그래도 작년보다는 좋은 모습 보여(?)그릴 수 있어서,

끝내 안울고 일어날 수 있음에 뿌듯했다.

 

 

 

전에 같이 근무했던 직장동료가

직장을 서울로 옮겨 사당 근처에 살고 있다길래,

기다릴겸 동네 케잌 맛집 찾으러 갔는데,

.....

서울임을 느꼈다.

쪼끄만 까페에 사람은 빠꿀빠꿀하고,
직원은 친절하지 않고, 노트북과 태블릿은 쓰지도 못하게 하고,

그래서 없던 공황장애가 생길거 같아,

나와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 아인슈펜너 한잔 뽈았다.

 

그리고 근처 할리스에서 전 직장동료를 만나,

의외로 함께 생활했던 2019년 얘기보다는,

지금 사는 얘기를 많이 했다.

남들 보기에는 아닐 수도 있지만,

잘살고 있는거 같아 므흣하였다.

 

그리고 친구를 만나러 사당에서 태릉입구역까지 갔다.

아... 퇴근길에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보았는데,

아.... 이렇게까지 살아야하나.... 싶었다.

 

 

 

시골사람이 퇴근시간에 서울지하철을 50분 동안 타고 온 고생 끝에,

친구를 18년 5월 20일 이후에 처음 만났다.

친구는 내게 지보러 왔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하며,

감격을 값진 음식으로 표현해주었다.

ㅋㅋㅋㅋ

시간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갭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진짜 재밌었다.

ㅋㅋㅋㅋ

 

2차는 친구동네에 맥주집을 갔다.

내가 가고싶다고 친구에게 말한 곳인데,

역시나 이놈은 이 가게 사장님과 친할 정도로 단골이었다.

이 가게 사장님은 이 나라 수제맥주의 선구자 같은 분으로,

내몸이 성할 때, 내가 맥주 정말 즐겨마시고 좋아했을때,

회사에서 책사준다길래, 이 사장님이 쓴 책을 신청해서 봤었다.

그게,

 

이 책이다.

 

거기서 강릉에서마냥 이런걸 묵었다.

왼쪽부터 프레아-노트-란드-도담도담인데,

좀 기록해두면,

프레아 : 꼬소하다.

란드 : 좀더 라거같은데 그래서 좀 밋밋하다.

노트 : 청량한 스모키. 낫 헤비.

도담도담 : 쌀드간 맥주라는데 쌀느낌은 몰르겠고, 의외로 씁쓸한 뒷맛이 좋았다.

이 중에 하나 꼽으라면 프레아.

이러게 맥주얘기, 내초미녀아내님의 이쁜얼굴얘기,

그래서 이러게 살고 있는 내얘기, 그만좀하라는 친구얘기 등... 아.. 재밌었다.

ㅋㅋㅋㅋ

 

내가 정말 운이 좋아서,

사장님께 이렇게 싸인도 받았는데,

 

싸인받고 나서 책의 에필로그를 다시보니,

싸인으로 써주신 멘트가 가벼운 인사말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어서 더욱 뭉클하였다.

이렇게 친구덕분에 먼가 성공적인 덕질을 하고,,

ㅋㅋㅋㅋ

 

이 동네가 멸치국수가 맛있다고 하여,

해장까지 철저히 허고,

각자의 잠잘 곳으로 돌아갔다.

 

 

 

숙박업소에 돌아와,

즐거웠던 서울 하루를 회상하며,

친구가 무라해서 선물이랍시고 사준

고오급 맥주(저거 한병에 미친 2.7만원임..)를,

 

고급지게 종이컵으로 꼴깍꼴깍 음미하며,

먼가 놀이공원같던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