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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를 가다 : 창평

朝聞道夕死可矣 2014. 12. 21. 00:20

금요일에 일이 다행히 일찍 끝나서 일찌감치 광주로 출발해 일을 보았다.

그 일은 다름아닌 빠마.


오프너를 들이고 새로이 경험하는 것들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빠마다.

이 나이 먹도록 한 번도 안해봤다가 올해만 두 번째다.

내가 빠마를 하는 이유는,


귀찮은 게 가장 크다.





두 시간에 걸쳐 빠마를 하고 나니 17시 반 즈음이 되었다.

오프너 안에 빠마약 내음 가득 뿜으며 부모님 댁으로 가는데,,

빠마한 집은 방림동에 있고, 부모님 댁은 첨단이거든....


이 시간대에 무료로 가려면 매우 차가 막힌다.

그래서 그냥 돈내고 편하게 가자는 생각에,


순환도로를 탔다.

방림동에서 첨단까지는 1200원짜리 톨게이트를 두 번 통과하니까 2400원이 든다.

그런데 내가 첫번째 톨게이트를 지나는데,

지갑에서 1000원 짜리 꺼내고 이백원 더해서 드리고 가는데,,

직원분이 다급하게 부르신다.


"님하~ 만원 주셨어요!!!"


이런 미친......

대출받아 사는 주제에, 이런 미친 짓을 하다니,,,

오프너가 쿠퍼S였다면 9000원을 그냥 흘릴 뻔 했다.


매사에 침착하자.







그리고 토요일.

가급적 광주를 가면 요즘은 집에 있으려고 한다.

물론, 불러주는 친구도 없지만..


그래서 집에 쭉 있으면서 출판작업 하면서 있는데,

사무실 같은 의자에 앉아 오전 내내 작업하려니 피곤하더라.

그래서 점심먹고 좀 자다가,,


일어났는데, 

너무 무료해.


그래서 어디 가까운데 마실다녀올까? 해서 창평을 가기로 했다.


창평은 슬로시티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나라에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들은 위와 같다.

나는 저 중에서 전주, 증도, 악양은 가봤었는데,,,

소소히 갔다오기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큰 기대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창평으로 오프너를 달렸다.


도착해서 본 하늘은 이러했다.


그리고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는데,,,,

100m 정도 걸어보니 이러했다.

음... 그래... 번잡하지 않고 사색적이야...


어느덧 이런 촌에도 수입차가 절반을 차지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슬로시티에서도 이렇게 분리수거는 한다.


그런데, 


슬로시티는 무엇인가?


이게 슬로시티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정의인데...

솔직히 말장난같다.


농촌과 도시, 로컬과 글로벌, 아날로그와 디지털 간의 조화로운 삶의 리듬을 지키자고 하는데,

이것들이 조화되지 아니하고, 농촌ㅡ로컬ㅡ아날로그가 죽어가는 것은 무엇인가?

답은 간단하다.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공존하자는 건가?


도시ㅡ글로벌ㅡ디지털이 버는 돈을 농촌ㅡ로컬ㅡ아날로그와 공유하자는 건가?

돈이 안되는데, 느림, 작음, 지속성으로 삶의 질을 유지하여 깊이와 품위를 추구할 수 있는가?


과연 중용만으로 가능한 건가?


저런 이념적인 것들보다도 어려운 것은,

지금 존재하는 슬로시티들이 느림, 작음, 지속성으로 삶의 질을 유지하여 깊이와 품위를 추구하고 있냐는 거다.


내 생각엔 아닌것 같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고,

먼가 내게 안식을 줄 수 있기를 바랬다.

공간에서 또는 경관에서 안식을 얻길 바랬으나, 

귀가 잘 안들리는 내게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매화나무집은,


이렇게 전통 한옥인 척 집을 지어놓았다.


고재선가옥은 전라남도 민속자료인데,


동네사람들만 볼 수 있었다.


착잡한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걸었다.

겨울스러운 돌담 사이에 길은 30대 미혼남성에게 상투적인 고독과 쓸쓸함은 무엇이 다른지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러다가 이렇게 열린 곳이 있어,,


들어가보니 이러했다.


머???!!!


이런 귀신나게 생긴 집을 두고 사진찍고 가라고?

장난하냐!!!!


화가나서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은 좋았다.


다시 또 돌담사이의 길을 걸었다.


그 와중에 하늘은 여전히 좋았고,


해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다른 돌담 사이의 길로 걸어가 보았으나,


이렇게 끝이 났다.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 번 전라남도 민속자료를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문이 열려 있었다.


하지만, 집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겁나게 하더니,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겁많은 나는 차마 발을 들이지 못하고 돌아나왔다.


이것이 국가 문화재라는 사실이 상당히 의아했다.

물론,

아는만큼 보이는 것이라,

배움이 부족한 내게 많은 부분 안 보였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내가 애초에 기대를 많이 하고 온 것도 아니고,,,

광주 부모님 집에서 여기까지 고작 20km 남짓이다.

거리와 기대감은 일반적으로 정적 상관관계를 갖는다.


도대체, 얼마나 배운 사람이고, 얼마나 동네 주민이어야 여기 이 공간이 만족스럽고 유의미할까?


아쉬웠다.

소소한 마실 생각하고 왔으나 그것마저도 안되었다.


가자.


오프너 소탑에,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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